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지음 | 김난주 옮김
이레 2004.07.05
평점

 오랜만에 수학 공식에 관심을 갖게 해 준 책이 있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 바로 그 책이다.

 책 띠지에 표시된 여러가지 수상이력만큼이나 뒤표지의 다양한 평이 이 책을 잘 설명해 주었고, 나 또한 책을 다 읽고 난뒤 호평에 걸맞게 흥미를 느꼈으며 또한 많은 부분에서 공감을 했다.

 소설의 구조는 비교적 단순하다. 등장인물들의 이름보다는 직업이나 호칭, 그리고 박사가 붙여준 또 다른 이름으로 소개된다. 주인공 나는 미혼모에 파출부다. 나와 박사는 파출부와 집주인의 관계다. 박사는 내가 파출부로 오가며 돌봐야 하는 80분 동안만 기억이 지속되는 노인이다. 여기에 머리 윗부분이 평평하기 때문에 박사가 루트(√, 수학기호)라고 이름 붙여준 내 아들과 박사의 미망인 형수가 등장한다. 루트와 박사의 관계는 할아버지와 손자의 관계처럼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해 주는 소중한 관계다. 미망인은 과거에는 박사의 연인이었지만, 지금은 20여년 전 사고로 인해 80분밖에 지속되지 않는 기억을 가진 박사를 보살피는 보호자의 입장이다. 이렇듯 등장인물 사이에는 일종의 갈등이 생길만한 요지는 없다. 딱 한 번 각자의 진정을 오해하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이들은 오래된 친구처럼 반복되는 일상 속의 관례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생활해 나간다.


 책에 소개되는 여러가지 수학용어는 보통 생각하는 까다로움이기보다는 단지 소설을 재미있게 구성하는 중요한 소재일 뿐이다. 예를 들자면 몸무게, 생년월일, 신발크기 등은 단순한 숫자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박사에게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 수로 탈바꿈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계승, 소수, 약수, 우애수, 완전수, 삼각수를 이끌어 낸다. 이는 수학이 어렵다고 생각해 싫어하는 사람들조차도 흥미를 갖게 하는 매력 있는 일이다.

 또 하나의 중요한 축으로 전개되는 것은 야구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 부분은 직접 책을 읽으면서 감상하기를 권한다.

 박사가 사랑하는 수식으로 저자가 강조하고 싶은 공식은 오일러의 등식이다. 이는 레온하르트 오일러가 쓴 논문에 나오는 공식으로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이 식을 수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수학에서 가장 비범한 식"으로 불렀다. 수학에서 가장 중요한 다섯개의 상수(자연로그의 밑 e, 허수단위 i, 원주율 π, 곱셈에 대한 항등원 1, 덧셈의 대한 항등원 0)와 네 개의 연산(지수, 곱셈, 덧셈, 등호)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절대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수(e)가 간결한 궤적을 그리며 한 점에 착지한다. 어디에도 원은 없는데 하늘에서 π가 e 곁으로 내려와 수줍음 많은 i와 악수를 한다. 그들은 서로 몸을 마주 기대고 숨죽이고 있는데, 한 인간이 1을 더하는 순간 세계가 전환된다. 모든 것이 0으로 규합된다.(p180)


 그러나 사실 박사가 사랑한 것은 오일러의 등식보다는 소수였다. 1과 자신 외에는 나누어 떨어지지 않는 수의 성질 때문에 오늘날 암호에 활용되는 수. 


 신은 존재할까? 이 물음에 대해 책에서는 이렇게 답한다. 


 나는 언젠가 박사가 가르쳐준 수학자의 말을 떠올렸다.

 "신은 존재한다. 왜냐하면 수학에 모순이 없으니까. 그리고 악마도 존재한다. 왜냐하면 그것을 증명할 수 없으니까" (p142) 


 사실 이 글에 대한 내 생각은 오일러가 무신론을 주장하던 프랑스의 철학자 디드로에게 한 일화가 그 배경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그 때 오일러가 디드로에게 한 말은 다음과 같았다. 물론 수학을 모르니 답하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각하, (a+bn)/n=x 그러므로 신은 존재합니다. 대답 해주십시오."  


 오랜만에 잔잔한 감동을 주는 소설을 만나 좋았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도 나왔다는데 소설 제목조차도 처음 대한 듯 낯선 것을 보면 내가 문화에 얼마나 담을 쌓고 살았는지 돌아보게 해준다. 다음에 시간이 나면 가까운 DVD대여점이나 도서관 시청각실을 이용해서 꼭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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